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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학번 조00 (2010년 8월 석사졸업후 ETRI 연구원) 조회수 : 3,266, 2010-11-22 11:01:23
전자공학부
Brought by 김수영 교수님




중학교 때 일화가 떠오르네요. 제 짝꿍은 전교 1등이었습니다.


저도 나름 우수한 성적으로 학창시절을 보냈습니다만, 그 친구는 소위 '넘.사.벽'이었죠.

순전히 제 자격지심인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그 친구의 관점에서 전 다른 친구들과 전혀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오십보백보, 도진개진, 도토리 키 재기. 하지만 그런 사실에도 자존심조차 상하지 않았습니다.

실제로 저는 굉장히 승부욕이 강하고, 지는 걸 싫어하는 성격의 소유자임도 불구하고,

그 친구는 인정할 수밖에 없는 '괴물'이었으니까요.



인수분해라는 걸 처음 배웠을 때 경악을 금치 못했고,

방정식이란 걸 처음 배웠을 때 세상에는 참 똑똑한 사람이 많다고 느꼈습니다.

그걸 느낄 무렵에도, 그 '괴물' 친구는 수학 정석 2(당시 고2과정)를 보고 있었습니다.

미분 적분이 적혀있던 걸로 기억 하는데, 이 사실도 상당히 나중에서야 깨달았을 뿐,

당시에 제 눈엔 그림책과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중간고사나 모의고사를 볼 때면, 어딜 가나 삼삼오오 짝을 이루어 답을 맞춰보는 친구들이 꼭 있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우리 반에선 서로의 답을 맞춰볼 필요가 없었습니다.

괴물의 한마디가 진리였기 때문이죠. 제가 분명히 책에서 본 문제조차도, 그 친구가 아니라고 하면 아니었습니다.

심지어 선생님께 대항하여 정답을 두개로 만들어버리는 그 힘! 신의 영역이라고 밖엔 생각이 들지 않았습니다.



그 무렵 수학시간엔 한 단락이 끝날 때마다 항상 시험을 보곤 했는데, 인수분해 파트였습니다.

시험이 끝나고 결과에 대해서 한 사람 한 사람 호명을 하면서 공개하던 중에 마침내 제 이름이 호명되었고,

반에서 첫 만점이 나왔습니다.

친구들의 함성이 터졌고, 저는 한없이 으쓱대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기쁨도 잠시 수학선생님의 눈에 "컨닝" 이라는 두 글자가 이글거리기 시작하더군요.

제가 그 정도 실력을 갖추지 못한 탓도 있었겠지만, 제 옆에는 항상 바로 그 괴물이 존재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여담입니다만, 지금은 선생님의 입장을 이해하지만, 당시엔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꼈습니다.



심증일 뿐 물증이 없었기에, 결국 그렇게 오해만 남긴 체 호명은 계속되었고,

마침내 괴물 친구의 이름이 호명되었습니다. 그 친구는 95점을 맞았더군요.

객관식이 아닌 주관식 수학 시험에서 95점 답안지를 컨닝해서 100점을 맞는다는 건,

설명하기 힘든 부분이 있었기에, 결국 컨닝에 대한 오해는 수그러들었지만,

마땅히 받아야 할 칭찬을 받지 못하고. 제 얼굴이 벌게져야만 했던 상황이 너무나 싫었습니다.

실제로 당시에 그 시험에서 만점은 저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친구들의 격려에 위안을 삼았고, 본의 아닌 자랑을 하자면 다음 시험부터 수학시험은 제가 진리였습니다.

다음 시험에도, 그 다음시험에도 말이죠.

선생님에 대한 분노가, 동기부여가 되었고, 이것만이 제가 “저 분노 했습니다”라는 사실을 표출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습니다.

그 후 괴물 친구와 2년을 같은 반 같은 짝으로 지냈지만, 여전히 나는 중학교 과정을 소화하기에 급급했고,

그 친구의 정석 책은 너덜거리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솔직히 말씀드리면

제 생각은 전과 전혀 바뀌지 않았습니다.

여러 과목 중에 단 한 과목만 비슷한 수준에 도달했을 뿐, 여전히 그 친구는 괴물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중요한건 이 시절, 수학의 진리는 저였습니다.

저는 미분적분도, 수열, 조합, 포물선, 쌍곡선, 아무것도 알지 못했지만,

중학교 1학년 때 인수분해 파트에서 본 시험의 1등은 저였습니다.

역사는 바뀌지 않았고, 그 기억 속에선 괴물조차 안중에도 없었죠.

고교에 진학해서 제가 미적분에 머리 싸매고 있을 무렵 그 친구는 가우시안이나

레일레이에 대해서 공부했을 테지만, 그건 저에게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그 무렵 제가 이것저것 쫓으려고 했다면, 저는 결국 지쳤을 테고,

항상 만족하지 못한 상황 속에서, 우왕좌왕 했을 게 분명합니다.

철없는 사춘기 시절의 무렵이었다면 더더욱 그러했겠죠.


취업을 하기 위해선 남보다 많은 지식을 갖추고, 높은 성적과, 보다 많은 경험, 책을 많이 읽어야 되고,

잘 쓰여 진 자기소개서와, 다수의 자격증 취득, 꾸준히 신문 사회면과 경제면을 읽어야 되고.

휴.... 나열하는 순간에도 힘이 빠지는군요.

과유불급이란 사자성어가 사라지는 순간입니다.

많으면 많을수록 인정받는, 많아야만 살아남는 분위기 속에서 경쟁을 하기 때문에,

취업 준비기간은 스트레스로 가득 찰 수  밖에 없는 게 사실입니다.



창의적인 이력서, 이력서다운 이력서, 개성이 강한 이력서, 공란이 없는, 자격을 갖춘 이력서.

뭐가 좋은 이력서 인진 모르겠지만, 자기가 가장 잘 쓸 수 있는 이력서를 쓰길 바랍니다.

남의 자취를 쫓는 게 나쁘다고 제가 감히 말씀드리지는 못하지만, 적어도 소신껏 행동했을 때,

후회는 남지 않을 거라고 믿습니다. 소위 이력서에만 국한되는 사항은 아닙니다만,

짧은 지식에 이정도의 예 밖에 들지 못하는 점은 깊이 사과드리겠습니다.

남들이 갖춘 걸 모두 갖출 필욘 없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었습니다.



누가 무엇을 하든 아랑곳하지 않고, 소신을 가지고 명확한 목표와,

자기 자신을 위로할 수 있는 여유를 가진다면 좋은 결과가 있을 거라고 믿습니다.

물론 이 역시 언제나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부분은 분명 아니겠지요. 판단은 현명한 여러분들에게 맡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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